경기도 파주엔 우리나라 유일의 군인자녀 기숙형 사립고인 한민고등학교가 있는데요, 중고생 자녀를 두신 분들에겐 제법 친숙한 명문고입니다. 공교육에 집중하는 일반고로, 지난 2014년 설립돼 2017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한 ‘신생 고교’이지만 서울대 등 명문대에 진학을 많이 해 주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민고가 의미있는 것은 비단 이뿐만이 아닌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우선 한민고의 역사와 특징을 좀 살펴보지요. 한민고는 군인들의 전후방 이동과 이로 인한 자녀들의 잦은 전학(평균 5,6회) 등으로 인한 교육문제를 해소하고자 지난 2014년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전 한민학원 초대이사장)이 주도해 문을 열었습니다.
한민고는 설립 구상부터 교정 설계·건설 등 전과정에 김 전 장관의 철학과 피와 땀, 모든 것이 투영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김 전 장관의 고교(경기고) 동기로 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많은 글을 써오신 홍두승 현 한민학원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도 한민고의 설립과 운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휘호 ‘대(大)한국인’을 본떠서 ‘대(大)한민고’라 명명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대한국인을 이곳에서 키우고자 했다고 합니다.
한민고는 후세에게 나라사랑과 상생의 중요성을 가르치고자 교훈을 ‘나라를 사랑하고 서로 나누며 미래를 준비하는 한민인’으로 정했다는데요,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한 인성교육이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3·1절과 광복절 계기 교육은 물론, 6월 호국보훈의 날 행사, 나라사랑 행사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매년 6.25 참전용사들의 목소리를 담은 자서전을 출간하며 국가유공자를 직접 초청해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여러 명의 독지가 지원을 받아 현재 132명의 초중학생들을 52명의 한민고 졸업 대학생,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코로나 이후 3년째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원의 70%를 군자녀로, 나머지 30%를 경기도 거주 일반인 자녀들로 선발하는데요, 사관학교/경찰대 등 특수대학 진로체험 활동 등이 이뤄지는 ‘JROTC’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반고 수준의 ‘기본 학비’만으로 전학생 기숙사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라는데요, 재학생 전원 기숙사 생활이 이뤄지는 기숙형 고교인 만큼 학생들이 사교육과 원천 차단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 3박4일간 귀가할 수 있고, 외출 또한 한 달에 한 번만 허용되며, 교사진 또한 기숙생활을 함께 하면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한민고가 단기간내에 주목을 받은 이유는 아무래도 높은 명문대 합격률인 듯한데요, 첫 졸업생이 나온 2017년에 11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내며 전국 일반고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데 이어, 2018년 8명, 2019년 10명, 2020년 16명(전국 고교 32위), 2021년 8명, 지난해 11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각각 배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민고의 가장 의미 있는 활동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호국명문장학생’ 제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전몰/순직 군경 유자녀를 매년 1명씩 선발해 한민고 입학부터 대학 진학, 사회진출까지 장학금, 진로 진학에 대한 멘토링 등 다각적인 지원활동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개교 첫해에 천안함 전사자의 자녀를 장학생으로 뽑기도 했습니다.
호국명문장학생은 지난해 첫 졸업생이 서울대 철학과에, 금년도 졸업생이 서울과학기술대학 컴퓨터공학과로 각각 진학을 했고 2,3학년에도 순직한 공군 조종사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호국명문장학생으로는 아주 특별한 사연을 가진 학생이 지난 2일 입학을 했는데요, 15년 전인 지난 2008년2월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 선효선 소령의 딸이 그 주인공입니다.
고 선 소령(당시 대위)은 당직 근무가 아닌데도 뇌출혈을 일으킨 병사에 대한 응급조치에 나섰다가 변을 당해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국군철정병원 소속이었던 선 소령은 이날 퇴근하면서 당직자에게 “급한 환자가 오면 나를 불러라”고 했다는군요. 이어 밤 11시쯤 뇌출혈을 일으킨 육군3군단 소속 병사가 앰뷸런스에 실려오자 운동복 차림으로 응급실로 달려 나왔고, 그 병사를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하게 되자 “응급조치 능력을 가진 내가 함께 가겠다”며 헬기에 동승했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번에 한민고에 입학한 고 선소령의 딸은 당시 생후 5개월이었습니다. 한민고 교육과정을 설계한 홍두승 한민학원 이사장은 “이들(전몰/순직 군경 유자녀)은 국가가 마땅히 챙겨야 하며, 온 국민은 이들을 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장학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호국명문장학생 제도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이외 지역의 학생은 데리고 올 수가 없다는데요, 현행 법령상 군인 자녀는 전국에서 모집이 가능하지만 순직자의 자녀는 일반 자녀로 분류돼 경기도 지역 이외엔 입학할 수가 없다는군요. 국회와 정부에도 여러번 호소했지만 별 관심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날로 고도화하고 있는 북 핵·미사일 위협 등에 직면한 우리나라에선 안보의식과 상무정신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합니다. 이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몰/순직 군경 유자녀들을 포함해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예우하고 보살펴 주는지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영국 등 이른바 안보·보훈 선진국들의 사례가 잘 말해주고 있지요. 이재봉 군인자녀교육진흥원 사무국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자녀가 자긍심을 갖고 커서 우리 사회의 주류로 들어가는 것을 볼 때 제복을 입은 현직 MIU(군인경찰소방관)는 물론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의 가치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6,7년 전 한민고에 전국 학부모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쏠리자 경북 지역에 제2한민고 설립이 추진됐는데 감사원과 정치권 일각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차제에 호국명문장학생 제도 개선은 물론 제2,제3의 한민고 설립도 다시 추진됐으면 좋겠습니다.